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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마츠 상』 4기 - 우리가 잃어버린 미래
2015년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오소마츠 상』은 센세이셔널한 작품이었다. 쇼와 시대의 캐릭터들이 ‘요즘 시대’에 어필하기 위해 그림체를 미형으로 바꾸고, 인기를 얻기 위해 여성향 장르를 시도하고, 헤이세이 시대의 애니메이션들을 마구잡이로 패러디했다. 『오소마츠 상』 1기 1화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생동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오소마츠 상』은 변화하는 시대의 역동성을 포착한 작품이었다. ‘어떻게 하면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캐릭터들의 고민 속에는, 시대에 끊임없이 응답하며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는—쇼와 출신 애니메이션으로서 필연적인—과정이 담겨 있었다.
문화평론가 마크 피셔는 정전적인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한다. “새로운 것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것에 응답하면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동시에 확립된 것은 새로운 것에 응답하면서 자신을 재형성해야 한다.”¹ 역동하는 현재 속에서 『오소마츠 상』은 자신의 계보를 끊임없이 재검토하고 재구성했다. 작품 내의 복고, 쇼와 레퍼런스는 어디까지나 그 실험을 위한 재료일 뿐이었다.


| 『오소마츠 상』 1기 1화 캡쳐 |
하지만 올해 방영된 『오소마츠 상』 4기에서는 그런 역동성을 일절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난 7월 첫째주에 방영된 『오소마츠 상』 4기 1화는 캐릭터들 각자가 저마다의 여름을 보낸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쥬시마츠는 데카판의 농사 일을 돕고, 오소마츠는 이야미의 불법 풀장 영업을 방해한다. 카라마츠는 바이크 만들기에 도전하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잠깐 우주에 나갔다가 돌아온다. 한밤 중에 노점에서 라멘을 먹고 돌아온 여섯 쌍둥이들은 “내일은 바다라도 갈까?”라는 담소를 나누며 잠자리에 든다.
지금까지의 『오소마츠 상』 1화가 그러했듯이, 『오소마츠 상』 4기 1화 역시 작금의 시대적 양상을 포착하고 반영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오늘날 포착한 시대성은 변화무쌍한 시대적 흐름이 아닌 정체된 현재였다.
과거로부터 자립하는 이야기
『오소마츠 상』 1기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구체적으로는,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어린아이에 머무르는 소년(니트)들에게 변화(취직, 자립)할 것을 촉구하는 이야기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꽤 흔한 도식이라고 할 수 있으나, 『오소마츠 상』에는 ‘쇼와 애니메이션 출신’이라는 자신의 태생적 위치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작품의 주역인 여섯 쌍둥이들이 ‘니트’캐릭터로 묘사된 탓에 간과되곤 하지만, 『오소마츠 상』은 언제나 멈춰 있는 이들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미성숙한 면모를 보이는 쌍둥이들에게 주변 인물들과 사회적 환경은 자립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쌍둥이들에게 붙은 ‘니트’, ‘동정’이라는 낙인은 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지시하는 한편, 이들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아이임을 지시하는 증표이기도 했다.
이러한 아이/어른의 이분법적 도식은 지금까지 일본의 소년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숱하게 등장한 ‘성장 서사’와 함께 일본 사회의 세대 규범을 시사한다. 성장한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것이며, 성숙해진다는 것은 곧 자기 세대에 걸맞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흘러 ‘오소마츠 상’이 된 여섯 쌍둥이들의 마음가짐은 여전히 쇼와 시절의 ‘오소마츠 군’에 머물러 있다. 『오소마츠 상』은 이들의 평온한 일상 속에 폭탄을 떨구고, 사회적 압력을 끊임없이 가하며 시대에 발맞추어 성장할 것을 요구했다.
이야기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오소마츠 상』은 쌍둥이들의 취업과 자립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1기 24화의 「편지」 에피소드에서 장남 오소마츠는 독립할 준비를 하는 동생들 앞에 분통을 터뜨리는 등, 지금까지의 가벼운 모습과는 이질적인 행보를 보였다. 오소마츠가 동생의 자립에 그토록 격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자신들의 성장이 그동안 안주하고자 했던 쇼와적 유산의 보금자리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쇼와 출신의 이들에게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변하지 않는 것은 정체된 것이며, 과거에 안주하는 이들에게 미래는 없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소마츠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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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소마츠 상』 1기 24화 캡쳐 |
하지만 1기에서 종지부를 지어야 했던 『오소마츠 상』 의 성장 서사는 작품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일을 구해 독립했던 쌍둥이들은 2기 방영을 앞두고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이야기가 계속되기 위해서 쌍둥이들은 성장이 멈춘 니트에 머물러야만 했던 것이다.
1기 종영 후 2년만에 재개된 『오소마츠 상』 2기에서 제작진은 작품의 폭발적인 인기에 곤혹스러하는 듯 보였다. 개그의 질은 1기에 비해 떨어졌고, 자립과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빠진 채 이전의 니트 담론을 공허하게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지만 작품이 방향성을 잃고 삐걱인다는 것은 작품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여전히 고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오소마츠 상』 3기에서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장치로서 AI 로봇 캐릭터들이 새로운 주역으로 합류한다. 쌍둥이들은 AI 로봇들에게 “쇼와 출신인 우리들에겐 받아들이기 벅차다”라는 메타발언을 한다. 쌍둥이들의 니트 생활 또한 3기가 방영되었던 코로나 시국을 반영하여 탈력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였다. “꽃놀이는 다음에 가면 돼.” 라며 정체된 일상을 암시하는 오소마츠의 마지막 대사는 코로나 시대 이후의 탈력감과 작품의 다음 행보를 어느정도 예견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대 감각의 상실’의 시대
『오소마츠 상』은 본래 프랜차이즈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작품이 아니었다. 『오소마츠 상』 1기의 결말부는 여섯 쌍둥이가 과거의 안식처로부터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미래를 분명히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품이 프랜차이즈화됨에 따라 이들이 나아가야 할 미래는 취소되었다. 프랜차이즈의 목적은 작품이 가진 문화적 생명력을 가능한 한 유지하는 것에 있다. 작품의 말미에는 결말 대신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는 암시만이 남는다. 영원히 계속되는 현재 속에는 특정한 시대성이나 시대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올해 방영을 시작한 『오소마츠 상』 4기가 개그물에서 일상물로의 장르 전환을 꾀한 것은 작품이 처한 시대적 환경의 단념처럼 읽힌다. 4기 4화에서는 마을 축제를 준비하던 쌍둥이들이 무대 뒤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때의 쌍둥이들의 대화는 『오소마츠 상』이라는 IP가 처한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다행이다. 올해도 잘 됐어.”
“근데 (사람) 조금 줄지 않았어?”
“줄었지.”
“그런가?”
“줄었어. 예전엔 좀더 축제 분위기였다고.”
“어쩔 수 없잖아. 시대가 변했으니까.”
(중략)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오소마츠 상』 4기 4화 中
이어지는 4기 5화에서는 축제의 후유증으로 만신창이가 된 쌍둥이들이 병상에서 회복을 시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가만히 누운 채로 “정말 이대로도 괜찮은 거야?”라며 동요하는 쌍둥이들의 반응은 더 이상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영원한 일상성’에 머무르는 작품의 방향성에 대한 불안감을 대변해주고 있다.
여기에는 눈여겨볼만한 점이 있다. 4기 이전까지 쌍둥이들의 불안은 ‘니트’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른 사회적 압박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 방영된 4기에서 쌍둥이들이 니트라고 불리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쌍둥이들의 고민 역시 “바다에 가고 싶다”거나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는 식의 일상적인 내용으로 바뀌었다. 변화에 대한 불안이 일상성에 대한 불안으로 전가된 것이다.
『오소마츠 상』에서 ‘니트’라는 키워드는 작품 내에서 꾸준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오소마츠 상』 3기에서 성장 서사가 빠진 채 명목상으로만 유지되었던 쌍둥이들의 니트 서사를 대신하기 위해, 제작진은 AI 로봇과 같은 당시의 트렌디한 요소를 반영하였다. 물론 AI 로봇 캐릭터 자체는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작품 내에 어떤 방식으로든 시대적 흐름에 응답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3기에서는 사람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AI 로봇들이 쌍둥이들의 도움으로 ‘니트 AI’라는 자신만의 인격을 형성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는 니트에 머물러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쌍둥이들의 일상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함께 작중에서 ‘니트’라는 단어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사회로부터 주어진 역할을 반드시 수행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역할과 가치를 진취적으로 만들어나가면 된다. 『오소마츠 상』 3기는 코로나 시국을 반영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있는 일을 찾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소마츠 상』 4기의 일상적 분위기는 얼핏 3기의 메시지를 계승하여 일상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중에서 ‘니트’라는 표현이 삭제된 것은 과거와 현재를 대비함으로써 작품의 현 위치를 가리키는 시대적 지표를 상실했음을 시사한다. 『오소마츠 상』은 이제 시대적 흐름에 반응하는 열린 세계가 아니라 영속적인 일상 속의 닫힌 세계를 그린다. 그나마 작중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안이하게 떠받들지 않았던 것이 지금까지의 『오소마츠 상』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인 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잃어버린 미래
지금의 『오소마츠 상』에서 쇼와 분위기를 기대하고 시청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1기 이후로 꾸준히 개그 소재로 쓰였던 쇼와 레퍼런스는 4기 들어서 작품의 스타일을 구성하는 배경으로 소모되는 것에 그쳤다. 『오소마츠 상』이 시대적 감각을 상실한 원인 중 하나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뒷받침했던 쇼와 레퍼런스가 프랜차이즈화되면서 ‘시리즈를 상징하는 요소’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다.
『오소마츠 상』 1기에서 쇼와 레퍼런스는 분명 작품의 기반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였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작품 내의 많은 설정이 현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쇼와 출신이라는 사실은 작품 내에서 줄곧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1기에서 표현된 시대적 역동성은 작품 자신의 쇼와적 배경을 현재와 대조하는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와 유사한 방식을 취한 작품으로 『루팡 3세』 시리즈가 있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루팡 시리즈는 작품 특유의 ‘스타일리시함’을 살리기 위해 과거와 현대의 시대적 요소를 교차하는 연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18년 방영된 『루팡 3세 PART 5』에서는 루팡 일당이 첨단 해킹 툴과 구식 도구, 전기차와 피아트 차량 등 구 문물과 신 문물을 구분 없이 활용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AI 기술과 딥웹, SNS등 현대 기술을 주요 소재로 다루면서도 구작을 연상케 하는 레퍼런스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극 활용하여 작품에 신선한 감각을 부여했다.
1기 이후의 『오소마츠 상』에서 시대적 감각이 점차 희미해진 것은, 작품의 프랜차이즈화와 함께 작품 내에서 과거와 현재를 대조하고 교차하는 작업들이 과거가 현재 속에서 무한히 반복·재생산되는 작업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프턴 테너는 자신의 저서 『포에버리즘』을 통해 프랜차이즈의 고전 레퍼런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인기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최신작은 대규모 ‘레퍼런스 보물찾기’의 장이 되곤 한다. 팬들은 음모론자가 되어 흩어진 점을 잇고 숨겨진 단서를 연결하며 역사의 흐름을 그려 나간다. 이것은 과거의 문화와 유물이 현재의 구천을 떠도는 곳에서만 가능한 영원주의 의식이다. 구작에 대한 레퍼런스로 가득한 신작을 보는 것은 마치 현재를 역사 속에 엮어내는 것과 같아서, 진보가 사라져 가는 세상 속에서 진보의 맛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과거를 영원화하여 언제까지나 살아가고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일이기도 하다.²
테너는 이러한 프랜차이즈의 ‘영원화 작업’이 과거를 현재 속에 묶어둠으로써 노스텔지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³ 영속화된 현재 속에서 과거는 작품의 현재를 뒷받침하는 일개 레퍼런스로 격하된다. 시대적 맥락을 잃은 과거는 현재 속으로 흩어지고, 비교할 대상을 잃은 현재는 시대성을 상실한 채 정체된 상태에 머문다. 끝나지 않는 영원한 일상 속에는 어떠한 ‘미래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소마츠 상』은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변했다. 자본주의 기업 문화가 우리에게 약속한 영원한 현재는 끝없는 피로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시대가 변했으니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듯 말하는 오소마츠의 태도는 정체된 사회 속에서 시대적 감각을 점차 상실해 가는 작금의 시대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¹ 마크 피셔, 『K-펑크』, 리시올, 2023, 274p
² 그래프턴 테너, 『포에버리즘』, 워크룸프레스, 2024, 37p
³ 같은 책, 2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