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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게임의 유령론 | 학교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SFC, 1995)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야자실에 갇혀 있다가 밤 늦은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것의 반복.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멀쩡히 지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야자를 피해 학교 복도 뒤에 마련된 탈의실 공간에서 잠을 자거나 학교 주변을 맴돌면서 시간을 보냈다. 더러운 매트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다가 학교 경비가 순찰을 돌 때마다 기둥 뒤에서 숨을 죽였던 기억이 난다. 밤의 학교는 어둡다. 추위와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배터리를 아껴서 스마트폰 에뮬레이터로 게임을 했다. 학교 건물은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나는 작은 용량으로도 오래 플레이 할 수 있는 고전 텍스트 기반 게임을 선호했다. 낮 수업 시간 동안에는 주로 일본어 공부를 했고, 밤 중에는 『역전재판』 시리즈, 『카마이타치의 밤』 등의 텍스트 어드벤처, 사운드 노벨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몰두한 게임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었다. 조악한 실사 그래픽과 불안한 사운드, 과격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게임에는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생동감이 있었다. 학교 공간은 유령에 씌여 있었다. 그 유령은 학교의 권위와 규율 로부터 온다.

폐허의 유령들 | 공간으로서의 유령론


오래된 것들에 의지가 깃든다는 내용의 괴담을 좋아한다.

가령 버려진 가구나 인형같은 사물들이 원한을 품고 사람들을 저주한다거나, 100년 된 나무를 베어내고 건물을 지으려 했던 공사 관계자들이 차례차례 불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들.

이 존재들은 자신을 해치려는 것들 앞에서 무력하지 않다. 이들은 귀신 씌우고, 저주하며, 두려움을 조성하는 '불온한' 방식을 통해 외부의 규범적 폭력에 저항한다. 버려진 사물들이 품는 저주는 그것이 있어야 할 장소, 존재 양식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 것에서 오는 비탄 섞인 반항이다. 한 곳에 뿌리박혀 수십 년을 살아온 나무는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마을의 정서와 공간에 씌인 유령적 존재들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외부 규범에 저항한다. 

그들은 자신만의 기이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있을 권리존재할 권리를 주장한다. 규범에 맞지 않는 것들은 그에 걸맞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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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탐험가들 중에는 유령이나 귀신, 도시 전설과 같은 심령 현상을 부정하면서 오직 '폐가의 분위기'를 체험하기 위해 공간을 찾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들 역시 유령의 흔적을 쫓기 위해 폐허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찾는 '유령'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국한된 것이 아닌 어떠한 '존재 양식으로서의 유령'일 수 있다. 폐허에 감도는 으스스한 느낌, 무언가가 공간 주변을 배회하는 듯한 서늘한 감각이 이러한 유령적 존재 양식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평론가 마크 피셔는 미적 체험으로서의 '으스스한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으스스한 것은 부재의 오류 혹은 존재의 오류로 구성된다. 으스스한 감각은, 아무것도 없어야 할 장소에 무언가 존재할 때, 혹은 무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1) 

으스스한 감각의 핵심은 부재와 불확실성으로써,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존재에 대한 추측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게임 『켄터키 루트 제로』는 이러한 '유령적 감각'을 탁월하게 묘사하는데, 게임의 등장인물들은 마치 유령처럼, 조명과 함께 등장했다가 사라지거나, 화면 밖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등 연극적인 방식으로 연출된다. 거주 공간에 남은 생활의 흔적, 폐허가 된 풍경, 존재가 남긴 잔해와 흔적이 곧 공간을 배회하는 유령적 감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흔적을 통한 존재 양식은 자크 데리다가 제시한 유령론(Hauntology)의 핵심 개념이다. 유령론은 데리다의 저서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처음 창안된 개념으로, '흔적(trace)'과 '차이(différance)'와 같은 그의 핵심 사유들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유령론에서 존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그 흔적과 차이를 통해 '이미 존재하지 않거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존재는 순수한 실재를 지닐 수 없으며, 오직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련의 부재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데리다의 유령론의 핵심이다.

데리다에게 있어서 유령은 탈구성과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존재 양식으로, 이미 떠났거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무언가다. 마크 피셔는 그의 저서 『내 삶의 유령들』에서 데리다의 이론이 음악 문화에 끼친 영향을 평가하며, 포스트모던의 이론적 불확실성이 그 자체로 문화적 정동의 약화를 불러왔다고 여겼다. 피셔의 유령론은 이런 포스트모던 문화의 '회의주의적 병리'를 문제삼는 작업이었다.2) 피셔는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햄릿의 구절 ‘시간이 어긋났다’를 통해, 유령론에 내재된 시간성의 문제를 이끌어낸다.

피셔는 마르크스주의의 종언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지배력을 얻었을 때 자본이 전 세계의 미디어, 문화적 영역에서 전례 없는 영향력을 획득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본이 미디어와 문화 영역을 장악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한데 섞어 현재화하는 방식으로 문화적 정동의 지형을 재편했음을 시사했다. 유토피아의 종언의 시대에 도래한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는 노스텔지어와 향수적 멜랑콜리아로 대표되는 문화적 쇠퇴를 야기했다. 피셔의 유령론에서 '유령'은 자본주의가 야기한 문화적 퇴행의 시대에 정처없이 맴도는 '잃어버린 미래'의 정동으로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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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의 흔적과 차이를 통한 존재 양식으로서의 유령론, 그리고 피셔의 문화적 징후로서의 유령론은 유령의 시간적 특성을 제시하지만, 공간적 존재로서의 유령적 특성은 상대적으로 열외되어 있다. 데리다의 유령론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적 가능성으로서 '지금-여기'를 교란하는 존재이지만, '지금-여기'에 대한 공간적 조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모호하게 기술된다. 피셔 역시 ‘잃어버린 미래’의 유령적 정동을 시간적 흔적으로만 파악하는 데 그치면서, 규범적 맥락 바깥의 장소성과 물질성, 규범 바깥에서 작동하는 유령적 감각은 논의의 대상으로부터 열외되고 만다.

유령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어휘들―'머무르는', '배회하는', '귀신 들린(haunted)' 등―은 주로 그것의 장소적 특성을 지시한다. 유령은 물질을 통과하고 정처 없이 배회하는 등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로 그려지는 동시에, 폐허나 묘지, 사고 현장처럼 특정 장소에 매여있는 '지박령'의 형상으로도 등장한다. 이처럼 유령은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특정 장소에 고정된 채 떠돌 수밖에 없는 이중적인 존재 양식을 지니는데, 이는 제시한 시간 너머로부터 도래하는 동시에, 특정 과거와 미래를 암시하는 유령의 시간적 특성과도 유사하다.

유령은 현실 세계의 물리적·제도적 질서 너머로부터 도래하는, 규범과 비규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기이한 존재다. 이들이 특정 시공간에 매여있다는 것은 외부 규범에 의해 그들의 본질이 억압되었음을 드러내는 징후일 수 있다. 괴담에서 등장하는 유령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가령 차에 치여 죽은 사람이 도로에 묶여 이승을 떠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는 식의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그들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연유로 이들이 '현실'의 규범적, 공간적 규약에 묶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유추할 수 있다. 폐허나 사고 현장, 버려진 곳과 같은 장소는 이러한 유령과 세계 사이의 규범적 충돌을 드러내는 흔적이 된다. 유령은 흔히 바깥 세계로부터 '침입'해 오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들의 존재가 우리 세계의 규범에 의해 침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우리가 유령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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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흔적은 분명히 어떤 기이한 존재를 암시한다. 그것은 우리 세계의 규범과 관습에 충돌하며, 남겨진 틈새와 잔해, 흔적을 통해서만 파악 가능한 어떤 것이다. 이러한 유령들을 포착하는 작업은 곧 유령과 현실 규범이 충돌하고 어긋나는 지점의 문화적, 사회적 징후를 포착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본 연재는 유령적 정서와 공간의 이야기, 흔적과 틈새를 통해 현실 규범을 넘어서려는 사유의 가능성으로서 '폐허 탐험'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이다.

앞으로의 연재는 폐허와 같은 공간 탐험을 기반으로 한 탐험록 및 문화 평론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버려진 공간과 재개발 지역, 쇠퇴한 도시와 같은 유령적 정서가 만연한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 정책과 공간에 대한 현실의 제도적 문제, 괴담 및 도시전설에 대한 내용을 함께 다루고자 한다. 




1) 마크 피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구픽, 2023, 99p
2) Mark Fisher, "Ghost of my life", Zero Books, 2014, 2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