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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게임의 유령론 | 학교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SFC, 1995)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야자실에 갇혀 있다가 밤 늦은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것의 반복.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멀쩡히 지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야자를 피해 학교 복도 뒤에 마련된 탈의실 공간에서 잠을 자거나 학교 주변을 맴돌면서 시간을 보냈다. 더러운 매트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다가 학교 경비가 순찰을 돌 때마다 기둥 뒤에서 숨을 죽였던 기억이 난다. 밤의 학교는 어둡다. 추위와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배터리를 아껴서 스마트폰 에뮬레이터로 게임을 했다.  학교 건물에서는 인터넷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작은 용량으로도 오래 플레이 할 수 있는 고전 텍스트 기반 게임을 선호했다. 낮 수업 시간에는 주로 일본어 공부를 했고, 밤 중에는 『역전재판』 시리즈, 『카마이타치의 밤』 등의 텍스트 어드벤처, 사운드 노벨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몰두한 게임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었다. 조악한 실사 그래픽과 불안한 사운드, 과격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게임에는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생동감이 있었다. 학교 공간은 유령에 씌여 있었다. 그 유령은 학교의 권위와 규율 로부터 온다.

<데드 스페이스>의 신체 단절과 고어 자본주의


2023년에 발매된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의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의 모델링 내부를 살펴보면 두께 0의 얇은 메쉬 내부에 뼈 조각과 내장 파편들이 그득그득 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고깃덩이들은 플레이어 캐릭터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자연스러운' 죽음 모션을 출력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자신 내부의 파편을 흩뿌리기 위해 거기에 있다. 아이작 클라크는 죽기 위해 존재한다. 그를 죽게 하는 것은 기괴하게 뒤틀린 괴물 네크로모프나 고장난 산업 기계가 아닌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플레이어다.

나는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를 플레이할 때마다 모종의 위화감을 느끼곤 한다. 분절의 감각. 나와 내가 조종하고 있는 신체 사이의 거리감. 공구들로 적들의 사지를 절단하고, 복잡한 함선 장비의 연결고리를 잇고 다시 끊어내는 작업들. 데드 스페이스의 진정한 공포는 게임의 고어적 요소나 분위기, 스페이스 호러를 표방하는 세계관을 넘어서 게임 시스템 자체에서 온다. 끊어내기, 분절과 변형, 사물간의 관계를 재조립하고 대상화하는 권력 관계.

사지 절단 액션을 표방하는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전투 시스템은 통상의 좀비 게임과는 달리 적들의 머리가 아닌 사지를 절단하도록 유도한다. 게임에 등장하는 적 네크로모프는 인간이 미지의 힘에 의해 변형된 괴물인데, 이들의 팔다리는 '자르기 딱 좋은' 형태로 변형되어 쭉 뻗어 있다. 가장 흔한 개체인 '슬래셔'는 물론, 단단하고 강력한 '브루트', 보스급 개체인 '헌터'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의 신체 부위는 본래의 용도를 잃은채 살아있는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변형되었다.



사지 절단이라는 게임성에 걸맞게 주인공이 사용하는 무기 역시 총이 아닌 공구다. 광석을 채굴하고 연마하기 위한 레이저 커터, 전동 톱, 천공기 등의 도구들은 적들의 사지를 절단하고 분쇄하기 위한 폭력적인 용도로 변형된다. 절륜한 절삭력을 지닌 근미래적 공구들 앞에 적들의 신체는 한낯 고깃덩이로 전락한다. 주인공인 아이작 또한 적의 공격을 받고 사지가 분해되어 바닥에 고기 파편을 흩뿌린다. 게임의 '신체'들은 고깃덩이로 분해되지 않기 위해 타인의 몸을 먼저 분해하여 고기로 만들어야 한다.

이 게임만의 고유한 시스템인 '스톰핑Stomping'은 게임의 폭력성을 잘 보여주는 장치다. 게임 내에서 쓰러트린 적의 시체가 온전히 남아 있을 경우에는 아이템이 드랍되지 않는데, 탄약을 쓰기는 아까우므로 시체를 '밟아서' 사지를 분해하고 깨부순다. 그러면 적은 비로소 탄약, 업그레이드 노드, 크레딧 등의 게임 내 재화를 드랍한다. 아이작의 폭력적인 '밟기'는 게임 설정상 적이 신체를 재생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고안된 '합리적'으로 계산된 행위다. 이러한 부관참시 행위를 통해 드랍된 크레딧과 탄약은 '게임 내 설정'을 철저히 따른 플레이어를 위한 물질적 보상으로, 적의 사지를 부수고 절단하기 위한 소모품이 되어 다시 사회에 환원된다.

데드 스페이스 2편의 상점 화면. 적이 드랍한 크레딧으로 무기와 슈트, 탄약 등을 살 수 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에서 고어는 표면적인 잔혹 묘사를 넘어 시스템적 폭력과 자본주의 권력 관계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게임 시스템 그 자체로서, 이는 플레이어와 캐릭터, 게임 내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복잡한 상호 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권력 체계다.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의하면, 자본주의 체제는 사태 배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을 상정함으로서 자신의 구조적 결함을 은폐한다. 데드 스페이스 세계관에도 이와 같은 '음모'가 존재하는데, 유니톨로지라 불리우는 종교 단체가 우주적 힘을 지닌 유물, '마커'를 숭상하고자 우주 전역에 네크로모프가 창궐하게 되었다고 설명된다. 하지만 이들 유니톨로지의 존재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네크로모프 사태의 원인이라고 알려진 '마커'를 둘러싼 여러 의문들은 코스믹 호러─인간의 힘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우주적 공포─라는 장르적 특성을 통해, 온전히 설명되지 않고 일축되거나 생략된다.

이 코스믹 호러 특유의 무력감은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였다. 1편에서 동료들을 모두 잃고 탈출한 아이작 앞에 나타난 절망적인 환영과, 모바일판에서 조직의 장기말로 쓰인 끝에 버려진 주인공 반달, 3편의 '코스믹 호러'적인 충격적인 엔딩은 거대한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인의 무력감을 드러낸다. 이들의 무력감은 구체적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적 불합리성에 대한 절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설정상 외계 종족이 자원 고갈과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양산한 마커의 작동 방식은─비인격적이고,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스스로 확장되는 특성을 지녔다는 점에서─자본의 논리가 세계를 집어삼키며 확장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이런 폭압적인 힘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이 시스템 내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이작의 영웅적인 면모 때문에 종종 간과되지만, 1편에서의 그는 상관의 지시에 묵묵히 따르며 생명을 담보로 일하는 노동 계급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제작진은 전형적인 영웅상보다는 플레이어가 쉽게 이입할 수 있는 평범한 주인공을 지향했으며, 그 결과 아이작 클라크는 시스템을 유지·관리하는 동시에, 게임의 구조적 논리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데드 스페이스는 시스템적 차원에서 플레이어와 주인공 캐릭터 사이에 분절감을 조성한다. 본래 생존 호러 게임은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1인칭 시점(FPS)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데드 스페이스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이었던 3인칭 시점(TPS)을 채택하였고, 기존 호러 게임과는 차별화되는 이질적인 조작감을 특징으로 하게 되었다.

게임 내 환경에 녹아든 사실적인 UI는 플레이어와 캐릭터 사이의 신체적 이질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아이작의 등 뒤에 달린 체력 게이지(R.I.G.)는 플레이어의 존재를 다분히 의식하고 있다. 아이작은 자신의 등을 볼 수 없고, 다른 NPC들도 그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오직 플레이어만을 위한 장치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아이작의 처절하고 외로운 생존기를 그린 게임처럼 보이지만, 아이작은 게임 바깥의 플레이어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노출하며, 심지어는 그것을 의식하면서 행동하기까지 한다. 그는 격렬한 난전 속에서도 플레이어의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자세를 유지하고, 탄약 표시등이 잘 보이도록 무기를 일정한 방향으로 겨누는 등의 부자연스러운 모션을 취하는데, 본작의 컷신에서 사실적인 애니메이팅을 위해 모션 캡쳐 기술을 사용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플레이어는 말 그대로 자신의 등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존재일 터다.

플레이어는 아이작의 등 뒤에서 그의 몸을 조작하고, 그가 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때로는 그의 죽음까지도 관망한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적과 주변 환경, 미션별로 준비된 다양한 데스신으로 유명하다. 아이작은 사지가 잘려 신체 파편을 흩뿌리고, 머리가 잘려 적에게 기생당하고,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다가 감전당하고, 배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가스로 질식사하고, 폭주하는 동력 장치를 피하지 못해 산산조각난다. 아이작의 영웅적인 면모에 가려진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때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안전장치 없이 묵묵히 일하다 자본 논리의 희생양이 되는, 산업 노동자의 가혹한 죽음을 본다. 하지만 트랩에 의한 즉사 구간이나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오는 네크로모프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게임 디자인의 부조리함이 아닌 자신의 조작 미숙을 탓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산업 현장이 위험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으로, 책임은 노동자 본인에게 있다"라는, 게임 구조에 내재된 사회 규범의 은폐와 암묵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아이작의 죽음에는 희열적인 면모가 있다. 온갖 방법으로 살해당하는 아이작의 모습은 사지를 파괴당하는 적들의 모습 이상으로 폭력적이고 과시적이다. 고어함의 대명사가 된 그의 데스신은 다양한 소재 및 구도를 활용해 오락적으로 연출된 종합 엔터테인먼트이자 고어 포르노그라피다. 주인공의 몸, 그것도 노동자를 대변하는 신체가 플레이어의 눈 앞에서 잔혹하고 희열적인 방식으로 살해당하는 것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플레이어와 아이작 사이의 거리에는 캐릭터의 고통과 죽음을 소비하는 착취적인 권력 관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또한 게임 시스템의 구조적 층위를 간과한 표층적인 '음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게임의 딱딱한 조작감이 야기하는 신체적 이질성은 아이작이 죽는 순간에 극대화된다.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아이작의 몸은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는 것처럼 불편하고 이질적이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 그는 플레이어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몸이 된다. 카메라는 플레이어의 시점에서 풀려나 이리저리 흔들리고, 아이작의 신체는 물리 엔진을 따라 격렬하게 움직이고 저항한다.

마침내 축 늘어진 아이작의 신체. 바닥에 흩뿌려지고 방치된 고깃덩이를 비추는 무심한 카메라 구도는 게임 바깥의 플레이어를 의식하는 듯 하다. 마치 그가 처음부터 고깃덩이에 불과한 존재인 것처럼. 부조리한 체제 앞에서 공포와 무력감을 체감하며, 생존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 아이작의 신체는 조각난 살덩이와 내장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죽기 위해 존재한다. 

내 것이 아닌 신체가 비로소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