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Featured

학교와 게임의 유령론 | 학교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SFC, 1995)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야자실에 갇혀 있다가 밤 늦은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것의 반복.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멀쩡히 지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야자를 피해 학교 복도 뒤에 마련된 탈의실 공간에서 잠을 자거나 학교 주변을 맴돌면서 시간을 보냈다. 더러운 매트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다가 학교 경비가 순찰을 돌 때마다 기둥 뒤에서 숨을 죽였던 기억이 난다. 밤의 학교는 어둡다. 추위와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배터리를 아껴서 스마트폰 에뮬레이터로 게임을 했다. 학교 건물은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나는 작은 용량으로도 오래 플레이 할 수 있는 고전 텍스트 기반 게임을 선호했다. 낮 수업 시간 동안에는 주로 일본어 공부를 했고, 밤 중에는 『역전재판』 시리즈, 『카마이타치의 밤』 등의 텍스트 어드벤처, 사운드 노벨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몰두한 게임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었다. 조악한 실사 그래픽과 불안한 사운드, 과격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게임에는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생동감이 있었다. 학교 공간은 유령에 씌여 있었다. 그 유령은 학교의 권위와 규율 로부터 온다.

테크노 문화의 쇠퇴 : ‘전통’과 ‘새로운 것’ 사이의 관계


최근 독일 베를린의 테크노 클럽이 줄폐업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봤다. 테크노 문화의 쇠퇴를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오래된 것은 도태되어야 한다는 식의 댓글도 적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대중들의 반응이 전자 음악의 현재를 명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느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낡은 행위'라는 것이다.

전자 음악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전반에서 이제 "새로운 사운드"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었다. 1990년대 정글Jungle 씬을 분석한 마크 피셔의 말처럼, 1993년의 정글 음악을 10년 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너무나 새롭고 급진적으로 들려, 음악이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1) 하지만 현재 일레트로닉 씬에서 유행하고 있는 EDM 음악을 20년 전의 사람들에게 들려준다고 한들 그리 새롭게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이전 글에서 다뤘던 The Caretaker의 인터뷰에서 그는 레이브(하드 테크노) 씬의 쇠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어릴 때 레이브 파티에 가곤 했고, 1987년에서 1992-93년 사이 전자 음악의 폭발적인 시기를 경험했어요. 새로운 장르가 매주 생기는 것 같은 시기였죠. 음악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클럽에서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정말 놀라운 시간이었어요. 이제는 그 에너지가 사라졌다고 느껴요. 요즘 사람들이 클럽에 가면 그런 에너지가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예를 들어 베를린에는 "워터게이트"나 "베르그하인"과 같은 멋진 클럽들이 있지만,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 맨체스터의 클럽들과는 정말 비교할 수 없어요. 물론 요즘도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어떤 것이 뜨면 그것이 성장할 시간도 없이 온라인에서 패러디로 묶여버리고, 그 씬이나 스타일은 등장도 하기 전에 죽어버린다는 거에요. 하우스와 테크노 같은 장르도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성숙해 왔어요. 이제는 그럴 시간이 없어요. 어떤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면, 그것이 무한히 복제되어 에너지가 사라지기 전까지 계속 반복되죠.”2)

이렇게 전자 음악 씬의 탈력적인 기조를 비판한 케어테이커 본인조차 SNS와 유투브 등지에서 "리미널 스페이스 감성"으로 묶여 소비되고, 무수한 패러디를 낳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이 테크노 씬에 한정된 것이 아닌 전자 음악, 더 나아가 대중 음악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테크노 음악의 정신적 쇠퇴에서 나는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의 사이드 퀘스트인 "10대들의 클럽 개설 돕기"를 떠올렸다. 게임 속 남쪽의 쇠락한 어촌 마을에서 주인공은 교회 옆에 텐트를 치고 앉아 있는 10대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버려진 교회에 하드코어 테크노 클럽을 세우려 한다.

그들이 굳이 교회에 클럽을 세우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k-펑크에 수록된 칠드런 오브 맨에 대한 글에서 마크 피셔는 T.S. 엘리엇의 불모성을 통해 정전적인 것새로운 것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새로운 것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것에 응답하면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동시에 확립된 것은 새로운 것에 응답하면서 자신을 재형성해야 한다. 엘리엇의 주장은 미래를 고갈시키게 되면 우리에게는 과거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전통이 더 이상 논쟁되거나 변경되지 않을 때 그 전통은 아무 쓸모도 없어진다."3)

폐허가 된 낡은 교회가 상징하는 것은 근대성의 몰락과 인문주의, 모더니즘의 잔해다. 따라서 교회에 클럽을 세우는 것은 폐허가 된 낡은 문화를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로 덮어씌우는 행위다. 하지만 아이들은 '인문주의의 무결자' 돌로레스 데이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부수지 않고 클럽의 상징으로 남기기로 결정한다. 곧이어 아이들에게 클럽의 이름을 지어줄 것을 제안받은 주인공은 클럽에 '디스코 엘리시움'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폐허가 된 낡은 문화를 그리워하는 것은 과거로의 퇴행을 의미하지만, 그들이 취한 것은 그 낡은 문화가 표방했던 이상주의와 낙관주의였다. 옛 문화의 가치를 환기하는 것은 새로운 문화에 의한 참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사람들의 정신을 갉아먹는 '창백'이라는 현상이 교회 건물 내에서 관측되는데, 창백에 노출된 이들은 치매 및 전진성 기억상실과 유사한 증상을 겪게 된다. 근대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남은 잔해 속에서 싹튼 비관적인 노스텔지어─"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과거에 안주하며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문화적 퇴행─을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음악 문화를 통해 몰아내는 것이다. 게임 초반에 주인공은 꿈 속에서 디스코 볼에 목을 맨 자신의 시체를 보았다. 그는 이제 하드코어 테크노로 계승된 디스코의 폐허 속에서 춤을 추며 근대의 망령들을 몰아낸다.


베를린 테크노는 2024년 3월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독일 슈피겔 지에 의하면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된 것 중 가장 젊은 전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베를린 테크노의 쇠퇴와 함께 한때 젊은이들이 주도했던 새로운 문화였던 테크노 씬은 곧 지켜야 할 전통으로 탈바꿈되었다. 여기서 "낡은 문화"가 된 것은 테크노 음악이나 테크노 씬 뿐만 아니라 테크노 문화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전통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후기자본주의 문화에서 전통이 지닌 의미를 재고하는 것이다. 노스텔지어로 대표되는 현재의 퇴행적인 문화적 기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테크노 문화의 새로운 것에 대한 가능성을 환기해야 한다. 하지만 테크노로 다시 회귀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문화 운동을 통해 테크노가 표방했던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 불러일으킬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1) Mark Fisher, "Ghost of my life", Zero Books, 2014, 18p
2) Mark Fisher, "Ghost of my life", 107p
3) 마크 피셔, "K-펑크", 리시올, 2023, 27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