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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유령들 | 폐광의 역사관, 무너져가는 것의 존엄성
2023년 8월, 태백시 철암의 탄광 시설을 둘러볼 수 있는 현지 투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태백시의 도시 풍경은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도시 규모에 비해 유흥업소와 모텔 건물이 지나치게 많았고, 도시 곳곳에 광부들의 산재 신청을 장려하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띄었다. 투어를 위해 철암역에 도착한 뒤에도 위화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역에 내리자마자 본 거대한 선탄시설과 태백 산맥의 풍광은 압도적이었지만, 가까이에서 본 철암의 마을 풍경은 다소 이질적이었다. 지역의 탄광 문화를 기념하는 화려한 조형물들은 마을에서 퍼져나가는 쇠락의 기운을 덮어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천을 따라 세워진 광부들이 살았던 '까치발집'은 전시장으로 개조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일터로 향하는 남편과 그를 배웅하는 아내를 묘사한 황동 조각상이 서로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영원히 서로를 배웅하는 모습으로 굳어진 두 형상들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는 이미 명백해 보였다.
광부들의 죽음과 산업 재해의 현장을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탄광 문화'로 포장하려는 철암의 시도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남성 중심의 탄광 마을에서 벌어진 성차별적 일화들을 들으면서 그곳에서 자행되었을 어두운 일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투어를 하는 내내 언젠가 버려져 폐허가 될 철암의 마을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투어 가이드는 철암에 거주하는 로컬 주민이었는데, 그녀는 탄광 근로자들의 고난과 애환을 설명하면서도 종종 눈물을 훔치곤 했다. 투어 도중에 갱도 입구가 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가이드는 우리가 운이 좋다면서, 평소에 보기 드문 귀한 장면이라도 본 것처럼 설명했다. 갱도 안쪽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갱도 안쪽에서 투어 가이드가 설명한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았다는 예감이 들었다.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무력하게 만드는 어찌할 수 없는 쇠락의 기운이, 갱도 안쪽으로부터 마을 전체에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화석의 역사관, 폐허의 역사관
철암에서의 경험은 내게 역사관에 대한 관점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수차례의 폐허 탐험을 통해 무너진다는 것, 잊혀진다는 것에는 나름의 품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역의 역사성은 마땅히 보존되어야만 하는가. 쇠락과 쇠퇴의 과정을 다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석탄은 식물의 유해로서, 수천 년의 시간에 걸쳐 석화된 생명의 역사적 말로다. 문화사학자 발터 벤야민은 바로크 문학에 등장하는 석화된 해골의 이미지를 통해 역사적 사물이 굳어지고 풍화되는 과정을 보았다. 모든 석화된 생명은 신체가 부패하고 굳어지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질료다. 쉽게 바스러지는 고운 입자와 은은한 광택을 지닌 석탄의 질료는 다른 광물과 차별화되는 이질적인 질감을 지니고 있다. 석탄의 이미지는 퇴적되고 박제된 이미지, 모든 유기적 존재들의 역사적 말로를 암시하는 죽음의 이미지다. 철암의 선탄 시설 뒤편에는 버려진 석탄들이 잔뜩 쌓여 시커먼 산을 이루고 있었다. 버림받은 물신의 말로. 가동을 멈춘 선탄 시설과 그 뒤편에 쌓인 시커먼 돌산은 물신이 그 의미를 상실한 채로 소모되고 버려진 자연적 폐허다.
모든 자원은 종국에는 소진되기 마련이다. 모든 자연적 역사는 한시적이다. 국내 석탄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소멸의 위기에 봉착한 철암 지역은 탄광 시설 투어를 기획하고, 조형물과 기념관을 세우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유적화했다. '탄광민들의 애환',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탄광 문화'라는 이미지를 석탄에 덧씌우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방식으로 역사적 영속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과거 '국가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지역 사회를 착취했던 지배 이데올로기 앞에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며 호소해야만 하는 철암의 지역사적 현실은, 착취의 기억을 스스로 기념화함으로써 다시금 지배 담론에 의존하게 만드는 근대적 역사관의 폐혜를 드러낸다.
벤야민의 바로크 연구에서 당대 문학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해골과 폐허의 이미지들은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문명의 한시성을 암시한다. "제왕은 몰락하고, 도시는 멸망하니, 옛날의 로마에서 남은 것이 없도다."² 죽음과 쇠락, 문명의 파멸을 암시하는 폐허의 이미지는 세속적 역사관을 비롯한 모든 인간적 형성물의 유한성과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유적이 되지 못한 건물, 기존의 역사에 편입되지 못하고 폐허가 된 건물은 근대적 역사관을 해체하고 자연적 역사를 감각할 수 있는 체험적 매개가 될 수 있다. 쇠락하고 벗겨진 건물에 퇴적된 시간성은 폐허 탐험 특유의 공간적, 촉각적 체험을 가능케 하는 질료적 매개다. 자연 속 화석이 생명이 소진된 후 남은 질료의 껍데기라면,³ 폐허가 된 건물은 장소의 세속적 역사성과 문화적 생동감이 소진되어 질료화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잊혀져가고 무너져가는 것의 존엄성
경상북도 상주시에 위치한 태맥광산은 2005년 9월 폐광된, 영남 지역 유일의 무연탄 탄광이다.⁴ 사무 시설로 쓰였던 부지 외곽의 큰 건물은 현재 창고로 활용되고 있으며, 광산 부지 내부에는 돌더미와 광부 숙소만이 남아 있었다. 방문했을 당시 음기 가득한 장소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았다. 건물 내부는 다소 습했지만 무거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커다란 창틀을 통해 유입된 햇빛과 바람이 건물 내부를 끊임없이 환기했다. 바닥의 잔해와 건물 파편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공간 내부에 생동감을 부여했고, 벗겨진 벽에 닿은 햇빛은 굴곡 있는 울퉁불퉁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곳에서 자연이 인간 문명을 풍화시켰다는 인상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건물 특유의 질감이 폐허 풍경을 석화된 자연적 풍광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부 형태가 남아 있었던 목욕 시설, 미처 지워지지 못한 검은 얼룩들이 탄광민들의 생활 흔적을 어렴풋이 연상케 할 뿐이었다.
이런 공간에서는 건물의 배경 정보가 그다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너져가는 것들의 존엄성. 건물의 풍화된 질감은 과거의 역사가 현재 속에 잔존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한시적인 자연적 역사의 말로를 드러낸다. 조각상과 기념비, 탄광 시설과 같은 역사적 공간들의 영원성은 인위적으로 빚어진 허상에 불과하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건물들이 세월의 풍파를 맞아 풍화되고, 망가지고 방치되며, 썩어 없어지는 폐허의 이미지는 인간 문명의 무상함과 그것을 애써 보존하려는 이데올로기적 허상을 해체하고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무너져가는 것들에게 존재론적인 힘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