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Featured

학교와 게임의 유령론 | 학교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SFC, 1995)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야자실에 갇혀 있다가 밤 늦은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것의 반복.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멀쩡히 지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야자를 피해 학교 복도 뒤에 마련된 탈의실 공간에서 잠을 자거나 학교 주변을 맴돌면서 시간을 보냈다. 더러운 매트에 누워 스마트폰을 하다가 학교 경비가 순찰을 돌 때마다 기둥 뒤에서 숨을 죽였던 기억이 난다. 밤의 학교는 어둡다. 추위와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배터리를 아껴서 스마트폰 에뮬레이터로 게임을 했다. 학교 건물은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나는 작은 용량으로도 오래 플레이 할 수 있는 고전 텍스트 기반 게임을 선호했다. 낮 수업 시간 동안에는 주로 일본어 공부를 했고, 밤 중에는 『역전재판』 시리즈, 『카마이타치의 밤』 등의 텍스트 어드벤처, 사운드 노벨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몰두한 게임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었다. 조악한 실사 그래픽과 불안한 사운드, 과격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게임에는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생동감이 있었다. 학교 공간은 유령에 씌여 있었다. 그 유령은 학교의 권위와 규율 로부터 온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후기자본주의 문화와 퀴어 가시성 문제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17이 지난 4월 막을 내렸다. 이 쇼를 본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예전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단지 시즌이 길어졌거나, 플롯이 식상해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때 리얼리티 TV 쇼의 형식을 차용한 드랙 경연이었던 『드래그 레이스』는 시즌을 거듭할 수록 리얼리티 TV 쇼의 형식 자체에 점점 포섭되어 가는 것 같다.

『드래그 레이스』는 1980년대 뉴욕의 드랙 경연 대회의 형식을 빌려온 미국의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으로, 미국과 해외 등지의 다양한 드랙 퍼포머―사실상 드랙 퀸1)에 한정된―들이 참가하여 립싱크, 볼2), 코미디 로스트, 뮤지컬 등 드랙 및 퀴어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형식으로 자신의 젠더 페르소나를 드러내는 경연 대회다. 경쟁에서 승리한 우승자는 상금과 'America’s Next Drag Superstar'의 칭호와 함께 미국 퀴어 컬처 씬에서의 영향력을 거머쥐게 된다.

2009년 작은 세트장에서 첫 시즌을 촬영한 『드래그 레이스』는 현재 미국 내에서만 27개의 시즌을 선보였고, 15개의 에미상을 수상하며 드랙 컬처가 미국 대중문화에서 유의미한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현재는 『드래그 레이스 태국』과 『드래그 레이스 UK』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수십 개의 파생 프로그램을 보유한 대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드래그 레이스』 시즌 1, 시즌 17의 메인 스테이지.

이런 미국 내에서의 인지도와는 별개로 『드래그 레이스』의 촬영 환경은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에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올스타즈 10』에서 참가자들이 제작진에게 격한 언행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있었지만 유의미한 반향을 얻지 못했는데, 방송에 출연한 참가자들의 열악한 대우가 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 내부에 분명한 문제가 있음에도 "출연진들도 같은 대우를 받고 있으니 피차일반"이라는 식으로 부조리를 정당화하는 시청자들의 태도는 일관적이지 못하다. 『드래그 레이스』에서의 취급을 계기로 회의감을 느껴 드랙 활동을 아예 그만둔 출연자도 있을 정도인데 시청자들은 이를 좀처럼 문제 삼지 않는다.3)

윌 베네딕트와 스테펜 요르겐센의 영상 시리즈 『The Restaurant』에는 "루폴은 21세기의 붓다가 되었다"는 내용의 나레이션이 등장한다.4) 이는 루폴이 미국 대중문화 내에서 드랙 문화를 주류화한 문화적 선구자의 위상을 획득했음은 물론, 현대 사회에서 우상화된 정치적 위상을 갖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드래그 레이스』의 영향력은 더욱 심화되어 왔다. 2024년 7월, 미국의 정치인 카멀라 해리스는 『드래그 레이스 올스타즈 9』의 오프닝에 등장해 선거 유세를 벌였다. 리조와 채플 론 등의 팝 스타들은 자신의 라이브 공연 도중 『드래그 레이스』 에 출연한 드랙 퀸을 등장시켜 퀴어 친화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2025년 초에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퀴어 차별 정책이 심화되자, 레딧의 팬 커뮤니티에서는 『드래그 레이스』가 트럼프 정권에 의해 폐지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를 표하며, 쇼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적극적인 토론을 벌였다. 마치 『드래그 레이스』가 미국 퀴어 컬처의 최전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드래그 레이스 올스타즈』에 출연한 카멀라 해리스(정중앙의 인물).

초창기 『드래그 레이스』의 목표는 미국 대중문화 속에서 드랙 씬의 문화적 위상을 넓히는 것이었다. 시즌 5까지만 해도 부족한 예산을 퀸들의 포스와 열정으로 메우고 DIY로 제작한 의상을 자신 있게 선보이는 등, 로컬 드랙 씬의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퀸들의 노력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드랙 컬처가 문화적 제도권에 포섭된 이후로 『드래그 레이스』는 기존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드래그 레이스』의 출연자들은 이제 자신이 입을 의상을 직접 제작하지 않는다. 쇼에 출연하기 위해 수십만 달러를 들여 디자이너에게 의상을 의뢰하고, 챌린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사설 강의를 들으면서, 쇼의 준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빚을 내는 일련의 과정은 출연진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관행이 되었다.

『드래그 레이스』는 방영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드랙 퀸만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로 남아 있다. 드랙 문화의 가시성이 이전보다 크게 향상된 것은 분명하지만, 시스젠더 여성 퍼포머, 논바이너리 드랙 아티스트, 드랙 킹5) 등의 다양한 드랙 스타일을 선보이는 이들은 여전히 비가시적인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드랙 킹 랭던 사이더는 『드래그 레이스』의 차별적 캐스팅을 비판하면서도, 시청자들의 기대와 요구가 변화함에 따라 보다 다양한 드랙 아티스트들이 『드래그 레이스』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6) 설령 그렇게 된다 한들 제도권에 의해 배제되거나 포섭되지 못해 소외되는 아티스트들이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드래그 레이스』라는 거대 플랫폼에 포섭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캐스팅의 다양성 문제를 넘어 "누가 퀴어 문화의 대변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미디어 권력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쇼에 출연하지 못한 퍼포머 뿐만 아니라 『드래그 레이스』에 출연했음에도 여전히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퀸들이 적지 않은 것은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일부 출연자에게만 집중되고 기존 드랙 문화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는 확산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 문화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적 문화 생산물인 리얼리티 TV 쇼는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 통제 수단으로서 기능한다.7) 리얼리티 TV는 쇼의 형식을 통해 무한 경쟁과 그에 따른 보상 체계를 이데올로기화하고, 경쟁에 뛰어든 이들을 시스템 내부로 포섭한다. 리얼리티 쇼는 누구도 그것이 '현실'이라고는 믿지 않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우리를 예속하는 자본주의적 현실을 생산해 낸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재능을 상품화하고, 자신의 이야기와 페르소나를 팔아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어필한다.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는 행보를 보인 몇몇 참가자들은 청중의 지지를 받아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참가자들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규범의 바깥으로 밀려나 잊혀지고 도태된다.

자신의 젠더 페르소나를 가장하고 수행하는 드랙 문화는 그 자체로 강한 연극성과 시각적 스펙터클을 지닌다. 때문에 드랙은 자신의 정체성과 스토리를 상품화하는 리얼리티 TV 쇼와 궁합이 좋은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쇼의 규모가 점차 거대해짐에 따라 『드래그 레이스』는 리얼리티 TV의 형식 논리에 종속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루폴은 종종 참가자들에게 "우리는 모두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는 퀴어 정체성을 '팔 수 있는 상품'으로 가공하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드랙은 정치적 수행이나 전복적 행위가 아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브랜드 전략으로 변질된다. 초기 시즌에서 드러났던 드랙 퀸들 간의 유사가족적 유대와 공동체적 정서는 시즌이 진행될수록 점차 희미해졌으며, 퀴어 공동체와 드랙의 정치성에 관련된 화두는 대부분 인터뷰나 고백 장면 같은 포맷 안에 갇혀 형식적으로만 소화되고 말았다. 『드래그 레이스』는 점점 로컬 드랙 씬과의 유기적 연결을 상실하고, 드랙 문화 전반의 다양성과 저항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예전에 동경을 품은 『드래그 레이스』에 점점 마음이 멀어져가는 이유일 것이다.


미디어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대된 퀴어 가시성이 퀴어 인권 향상에 어느 정도 기여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시성이 확대되었다고 해서 제도권 내부의 문제들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작년 광화문 시위에서 트랜스젠더 깃발 밑에서 행진을 하고 있는데 선두에 선 행진대가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광장에 나온 것은 우리들의 일상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행진, 좋은 구호다. 하지만 그 '변치 않는 일상'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착취와 소외를 야기하는 구조일 수도 있다는 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날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분명 급진적이거나 전복적인 변화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자신의 안녕을 위한, 변치 않는 평온한 일상을 위한 연대. 그 '일상'으로부터 소외된 사회 구성원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바운더리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것만이 과연 정답일까? 바운더리 안팎의 경계가 계속 남아 있는 한, 소외되는 이들은 계속 생길 것이다...

『드래그 레이스』에 마음이 멀어진 지금, 아직은 비가시적 영역에 놓여 있는 한국의 드랙 컬처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가시성이 확보된 이후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퀴어 커뮤니티 본연의 교차성과 공동체성, 나와 타인의 경계를 흐리는 끊임없는 연대가 구조 자체를 전복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기대를 품고 있다.



1980년대 뉴욕의 드랙 씬과 유색인종 퀴어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드랙 컬처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1) 주로 여성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분장하고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드랙 아티스트를 일컫는다.
2) Ball. 1980년대 흑인 및 라틴계 드랙 씬에서 형성된 하위 문화로, 드랙 퍼포먼스와 보깅(Voguing), 패션, 경쟁이 결합된 경연 대회다. 『드래그 레이스』에서는 주제를 정하여 직접 의상을 만드는 패션 챌린지를 의미한다.
3) https://www.vulture.com/2016/09/phi-phi-rupauls-drag-races-edit-and-rupaul.html
4) 대중 문화와 쓰레기 미디어 사이의 연관점을 탐구하는 영상 프로젝트로, 여기에서 볼 수 있다. https://dis.art/series/the-restaurant
5) 현대 사회의 남성성을 과장하고 표현하는 방식으로 분장하고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드랙 아티스트. 퍼포머의 여성성을 연극적으로 표현하는 드랙 퀸과는 달리, 현대의 가부장적 남성성을 풍자하는 면모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6) https://www.youtube.com/watch?v=gxWrE_DEI5M
7) 마크 피셔「적이 누구인지 기억하라」, K-펑크리시올, 2023, 339p